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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 16:46

아방궁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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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궁의 진실

 

 

아방궁(阿房宫)은 진시황제가 세운 궁전이다. 함양과 위수 근처 즉, 섬서성 서안시 서측 13km 지점의 아방촌(阿房村)에 자리한다. 진시황의 사후에도 공사가 계속되었지만, 진이 멸망한 탓에 미완성으로 끝났다.

진시황제가 재위하면서 효공이 세운 함양궁은 협소하다고 하여 황하 지류 남측의 상림원(上林苑)에 새로운 궁전 축조를 계획했다. 아방(阿房)의 땅에 궁전을 건설하려고 했지만, 진시황 생전에 완성하지 못했다. 사마천의 史記에 의하면, 궁전 규모는 동서로 5백보(3000), 남북으로 50(500)이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동서로 600m~800m, 남북으로 113m~150m에 이른다. 그 궁전 위에는 10,000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에는 15미터 가량의 기를 세울 수 있었다. 전 밖에는 목책(木柵)을 세우고 복도를 만들어 남산에 이를 수 있고, 복도를 만들어 아방에서 위수를 건너 함양궁에 연결되었다.

아방궁.jpg

 

史記에 따르면 아방궁은 나라 項羽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항우에 의해 불탄 것은 함양궁이고 아방궁은 불타지 않았다는 설이 2003년에 제기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아방궁은 이 궁궐의 정식 이름도 아니었다. 사마천의 史記에 따르면 아방(阿房)는 가깝다는 뜻이고, ‘은 곁방() 자와 같은 뜻으로, 기존 함양궁 근방 일대를 부르는 지명이었는데, 공사 중에 임시로 이 지명 아방을 붙여 아방궁이라고 불렀고, 결국 미완성 상태에서 끝나 정식 이름은 지어지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궁전으로서 역할도 못하고 사라졌지만, 그 위세가 어찌나 대단하였던지 아방궁이란 명칭은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남아 있다.

본래 진나라의 수도에는 이미 여러 차례 증축한 거대한 함양궁이 존재했는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때만 하더라도 계속 함양궁에 머물렀다. 이후 거대한 능묘와 만리장성처럼 새로운 궁궐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방궁이다. 그러나 아방궁은 중국 역사상 황제의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대명궁과 자금성, 원명원, 기타 황실 불교 사원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작은 편에 속한다.

아방궁1.jpg

 

아방궁3.jpg

 

아방궁4.jpg

 

진시황이 건립한 만리장성이나 능묘가 실존하는 만큼, 이 건물도 실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정작 아방궁지에서는 관련 유물이나 증명할 만한 고고학적 자료는 출토되지 않아 실존을 의심하는 학자도 많은 편이다. 진시황의 호화 궁궐이었다는 전설 속의 아방궁은 짓다가 중단한 설계상의 건축물이고, 초나라의 항우(項羽)가 불 질렀다는 고사는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 연구소와 시안(西安)시 문물보호국 고고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아방궁 발굴단은 지난 2002년부터 5년간 아방궁 터를 전면 탐측·발굴한 결과 아방궁의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발굴단의 리위팡(李毓芳) 연구원은 시안시 함양(咸陽) 아방궁터 추정지 부근 62를 샅샅이 정밀조사했으나 건물을 짓기 위한 토대만 남아 있을 뿐 건축물이 완성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발굴 결과에 따르면 아방궁터에는 동서 1270m, 남북 426m의 흙이 단단히 다져진 토대가 있었고, 이 토대는 동서와 북쪽에 담으로 둘러싸였으나 남쪽에는 담이 없었으며 불탄 흔적도 없었다. 담은 흙벽이 쌓아졌고 벽 위를 장식했던 기와도 있었지만 기와는 진나라 때의 것이 아니고 나중의 동한(東漢)과 북조(北朝)시대의 것이었다.

결국 아방궁은 설계상에만 존재하고 건물을 세우기 위해 토대만을 닦은 후 진나라가 멸망하자 중단된 미완성 공사인 셈이다. 리위팡 연구원은 사마천의 사기진시황본기(秦始皇本記)에 항우가 함양에 진입한 이후 사람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가는 등 학정을 했던 사실은 기록돼 있지만 아방궁을 불 질렀다는 기록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기에 적힌 항우의 군대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뒤 "진나라 궁전에 불을 질러 석달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으며 수많은 보화와 부녀자가 재로 변했다"는 기록은 아방궁을 가리킨 게 아니라 아방궁 이전의 진나라 궁궐인 함양궁을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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